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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 운동-드라마 녹두꽃

김창수 (훗날 백범김구 선생)는 5세에 동학에 입문하여


16세의 나이에 황해도 고을의  접주(소대장격)에


19세의 나이에는 황해도 총접주가 되었다.




1894년 1월 일본군이 경복궁 무력으로 진압하며 점령하였다.


주동자는 중장 기시 노부스케 (현재 아베총리의 외고조부)




백범일지 중


손병희 선생께서 급보를 보내와 달려가보니 


내용인즉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임금이 왜군에게 잡혔다"


*드라마 녹두꽃에 나오는 이른바 갑오왜란이다




각지역의 장군들과 논의를 하던중 손병희 선생께서 논의를 중단시키고 말씀 하시길


"호랑이가 쳐들어 오는데.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나가 싸워야지"


이른바 총동원령이었다.




장면 1


백범과 안중근의 첫만남


아이러니 하게도


김창수의 동학군은 군사를 몰아 내려가던중 해주 청계리에서 안중근이 속한 민병대와 대치한다.


당시 민병대는 동학군을 방어하기 위한 민관의 자치군이었다.


포수만 700명에 5천명여명의  동학군에 비해 안중근의 민병대는 70여명 남짓.


안태훈(안중근 부친)은 밀서를 보내 화해를 제의 하였고

총접주 김창수(백범 김구)는 "왜적이 쳐들어 오고 있는데 조선사람끼리 싸우는것은 득이돼지 못한다"며 이를 받아 들였다.


*만약 이날 전투가 벌어졌더라면 안중근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을것이다.




북접  최시형의 10만농민군은 해주성을 점령하였고


남접의 전봉준의 10만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며 승승 장구하엿으나




드디어 공주에서 조선의 관군과 일본의 연합군을 만난 동학군은 크게 패배하엿다.


당시 일본군은 독일제 쿠르드 야포와 케틀링 기관총을 갗춘 현대식 정예병이었으니


일본군에게는 농민군으로 이루어진 동학군의 전투는 거의 학살이나 다름없는 전투였다.




*당시에 대해 백범김구 선생께서는 기관총에 쓰러져가는 동학군의 모습을 보고 크게 좌절했다고 말했다.




장면2


을미사변


1895년 주한공사 미우라의 지휘로 일본낭인과 공공사수비대는 다시 경복궁을 침입하여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궁녀 30명을 살해하여


경복궁 뒷마당에서  불태운다.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은 황해도 치아포를 지나던중 일본인으로 의심되던자가 보였다.


백범선생이 다그치니 칼을 들고 덤벼 들었다.


칼을 빼앗아 그자리에서 배에 칼을 꽂아 살해하며 외쳤다.


"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갚았다"


국모보수 라는 글을 써서 마당에 깃발로 꽂아두고 집으로 돌아온 김창수는 찾아온 일본헌병에게 자진하여 체포 되었다.



살해된 이는 나중에 일본군 특무장교로 밝혀졌다.


김창수는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파옥하여 만주로 가서 이름을 김구로 개명하고 대한민국 입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백범 일지 중

윤봉길 군이 찾아와 말하기를

"제나이 31세 입니다.앞으로 31년을 더 산다한듯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조국을 위해 온몸을 던지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1년후 거사전날 폭탄을 윤봉길 의사에게 주고나서 다음날 윤봉길 의사와 아침을 먹기 위해 찾아가니 윤봉길 의사가 웃으면서 나를 맞앗다.

"윤의사가 나를 보고 말하길 제시계는 6원 짜리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시계랑 바꾸시죠."

나는 차마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폭탄을 가지고 식장으로 향하기전 윤의사는 남은 6원을 나에게 주며"저는 이제 쓸일이 없을것 같네요"

그즈음 차는 소리를 내며 떠나고 나는 윤의사에게 고개를 숙엿다.


장면 3


일본군은 1887년 까지 동학농민군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전국적인 소탕을 개시했다.


당시 소대단위로 전국국을 돌며 동학군을 살해하였는데 당시 기록으로는 1897년 한해에만 1만2천명의 동학군 잔당을 토벌 하였다고 나와있다.


몇해전 일본 국립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뉴스에도 나온 자료 내용이다

기노유키 중위가 이끄는 12명의 소대원은 경상도 경주지역을 돌면서 약 340명의 동학군을 처형하였다고 나와있다.




눈빛이 불량하거나 똑바로 쳐다보는 자들은 동학군이니 모두 체포하라고 하였다.


체포된 동학군을 바닷가로 끌고가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니 모두 바다로 뛰어 들었다.


육지로 올라오는 자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동학군을 모두 처형하고 다함께 천왕폐하 만세를 불렀다.




조선의 마지막 9대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패전후 이임식에서 말하길


-일본은 미국에 패하였지만 조선은 스스로 독립한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들에게 총칼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온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현재 일본의 총리인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다.


1894년 갑오왜란을 일으켜 경경복궁을 점령한 중장 기시 노노부스키는 


현재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고조 외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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