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로스트아크 플레체 스토리 팬픽 & 페이퍼 아트
안녕하세요 로스트아크를 즐기고 있는 (출석과 아주 소량의 숙제만 하는) 아줌마입니다.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틈틈히 만들었습니다.. ㅠ _ㅠ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면서 인상깊던 장면 등을 선택하고 조합해서 페이퍼 아트를 제작하고
시나리오 진행 도중 느낀점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던 말입니다.
아마도 클라우디아라면 기꺼이 이렇게 말했을테니까요.
팝업 이미지는 아이와 여행 다녀온 후 완성해서 책자로 만들 예정입니다.
실제 팝업 제작본과 이미지 샘플은 차이가 있습니다.
완성본은 10일 이후에... ㅠ_ㅠ
이하는 직접 작업한 팬픽입니다.
아이가 떠나는 새벽
로스트아크 플레체, 아이가 자라는 밤 팬픽
죄 없는 자, 살아남으리라 -
굵은 빗줄기는 바늘과도 같았다.
네 죄를 나는 알고 있노라고 말하듯 매서운 비가 세차게 대지를 할퀴던 밤이었다, 라사모아를 떠난 것은.
가쁜 숨마저 삼키며 쏟아지는 빗속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믿음에 의지해서 달리고, 또 달리기를 반복했다.
이 길을 가게 되면 빛으로 충만했던 신의 지상 대리인으로 촉망받던 과거도,
눈부신 재능을 지닌 화가로 빛나던 삶은 더 이상 없다.
무심하게 흘러내리던 연한 잿빛이 감도는 금발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올려묶은 여자는
청초한 얼굴의 수려한 미인이었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몇 안 되는 짐을 추렸다.
짐이라고 해 봤자 약간의 골드와 장신구,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성서와 묵주가 전부였다.
성서와 묵주에는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하고, 어디서 자신을 향해 날아올지 모르는 추격자의 손길에 두려워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클라우디아는 두 뺨을 가볍게 치며 나약해지려 하는 자신을 다잡았다.
‘괜찮아.’
교황 구스토의 자애로운 손길이 그녀의 손 위로 덮였다.
퍼져나가는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바라본 그의 눈빛은 따사롭고 평온했다.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믿음이 가리키는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세이크리아에서는 데런을 자신들과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카제로스와 페트라니아, 붉은 달의 찌꺼기라 생각하며 핍박하고 박해했다.
그녀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다,
그녀가 믿는 신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쓰이는 슈샤이어의 노예보다 못한 데런들의 최후를.
클라우디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빛은 질서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녀 역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황혼의 진리가 맴돌았다.
더더군다나 이 아이는 황혼의 계획에 의해,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아이,
그녀 눈앞의 요람 속 작은 아이의 앞날은 그저 어둡고 피비린내만이 진동했다.
입술을 깨무는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 처지가 얼마나 안타까운지
알 길 없는 아이의 눈은 여느 아이와 같이 맑고 맑았다.
제 앞날의 아픔이야 알 바 아니라는 듯 방긋방긋 말갛게 웃고 있는 아이의 배냇 웃음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흔들림 없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믿는 신을 보았다.
“부디, 당신을 등지고 제 가난한 품에 품는 것을 허락하소서... ...”
은실로 문양을 짜 넣은 희고 매끄러운 사제복이 반질 반질 빛이 나는 대리석 바닥으로
사라락 흘러 내렸다.
올이 성긴 암갈색의 밋밋하고 푸석한 치맛자락이 펄럭이고,
거슬거슬한 다갈색 로브가 어깨 위로 내려 앉았다.
거친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녀는 얼핏 보아서는 평범한 마을 사람과 같아 보였다.
품에 어린 아기를 안고 있을 뿐 여느 마을의 아낙과 다름 없었다.
외지고 험한 지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빠른 길로 항구를 향하여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흐른 빗물 한 방울이 아이의 발간 뺨에 톡 떨어졌다.
항구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무섭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그녀의 품은 더운 온기가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색색 숨소리와 고른 호흡만이 품속의 아이가 무탈함을 알려주었다.
저 멀리 희미한 바다 내음과 함께 세이크리아의 밖으로 향하는 상선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또르륵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제 뺨에 떨어진 물방울이 귀찮은지 고개를 젓는 아이의 뺨을 쓸어주며 클라우디아는 나지막하게 읇조렸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하나니.. 자애로운 당신의 빛으로 품어주소서... ...! ”
그녀와 아기가 사라진 것이 황혼에게 알려지기 전에 저 배를 타야만 했다.
클라우디아는 다시 아기를 고쳐 안고 뻣뻣한 다갈색 로브 안에 웅크리듯 몸을 감추었다.
그녀의 온기로 따스한 품 안에서 아기는 타박 타박 그녀의 발걸음이 주는 부드러운 진동을 느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맹렬하게 퍼붓던 빗줄기도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 앞에서 그 위세가 한풀 꺾였다.
왁하게 떠드는 선원들의 목소리와 마스트에 쏟아지는 햇살의 한 자락을 느끼며
뱃고동의 부우우우웅 출항 알람과 함께 클라우디아는 안도했다.
성글게 짜인 올이 뻣뻣한 다갈색 로브 위로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길게 흘러내렸다.
자신을 품은 포근한 냄새와 따듯한 온기에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도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녀와 아이가 탄 배의 선실에는 파도가 들이치지 않게 천장 가까운 곳에 작은 쪽 창이 나 있었는데
그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의 변화만이 시간의 흐름을 대변했다.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승객들이 거의 다 잠든 깊은 밤,
작은 선실 한구석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성서를 펼쳤다.
성서의 안쪽에는 아무런 실링도 되어있지 않은 상아색 종이 한 장만이 무심히 반으로 접혀 들어 있었다.
그 종이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였다.
클라우디아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아주 약간의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여기저기 일행과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주변을 살피고 또 살피며 몸을 움츠렸다.
이내 백지에는 정갈하고 우아한 교황 구스토의 글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눈에 짙은 감정이 번졌다.
힘든 길을 가게 될 그녀를 응원하는 교황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녀의 품이 그리운지, 아니면 배가 고픈 것인지 힝애 힝애 아기가 보채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놀라 당황한 그녀의 곁으로 언제 잠에서 깬 것인지 인자한 표정의 노부부가 다가왔다.
나지막하게 웃으며 그들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늙으면 잠이 없다우.”
몇 안 되는 승객 중 유일하게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 이들은 차림세는 근사하지 않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의 노부부였다.
그들은 그녀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동정이 아닌 애정이 어린 눈빛이었기에 클라우디아는 살짝 안심하였다.
“아기가 기저귀가 답답한가 보오.”
“아니라니까요, 이건 배가 고파 우는 울음이에요.”
아이를 받아 안은 노인은 천천히 상체를 흔들며 아이를 다독였다.
노부인은 귀까지 붉어져 허둥거리는 클라우디아를 대신하여 능숙한 손놀림으로 기저귀를 접었다.
포근한 노인의 품에 안기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먹기 좋게 데워진 우유를 힘차게 오물거리는 아기와
클라우디아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눈에도 몽글몽글 솜사탕같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내 뭐가 불편한지 아기가 또 미간을 찡그리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기저귀가 문제라니까요?”
노부인은 웃으며 남편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클라우디아가 말릴 틈도 없이 아이의 배내옷을 벗긴 순간,
노부인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아내의 얼굴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남편 역시도 잠시 눈빛이 흔들렸다.
동시에 클라우디아의 눈에도 공포가 떠올랐다. 그녀는 두려움에 마른 침만 삼켰다.
아직은 이른 시간 탓에 선실 안은 코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
숨소리만이 흐르고 있었고,
축축한 기저귀가 벗겨지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히 젖병을 물고 있었다.
낡은 실내등만이 깜박 깜박 흐릿한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는 선실은 한 여자와 부부,
그리고 아기의 시간만이 느리게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다정하던 손끝이 차갑게 식으며 미세한 떨림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가슴에서 붉게 빛나는 데런의 표식을 바라보는
부인의 눈에는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짙게 피어올랐다.
창백한 얼굴로 손끝이 떨리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이내 노인은 아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저 아기요, 세상에 아무 죄가 없는.”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남편의 목소리에 이내 노부인의 손에서 떨림이 멈추었다.
주름 가득한 두 손이 포개어지는 모습을 보며 클라우디아는 신의 사랑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노부인은 숨을 고르고 다시 빠르게 손을 움직여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갑갑한 기저귀를 갈고 난 후 개운해진 아이는 빈 젖병을 가지고 놀다가 노곤한 표정으로 연신 하품을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와 함께 자신은 여기에 살아있다는 듯
작은 손을 오물거리는 아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고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실의 쪽창 밖으로 철썩이는 파도의 노랫소리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따금 불안한 눈빛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노부부는 클라우디아와 아기를 외면하지 않았고,
클라우디아는 두 노인의 도움으로 아이를 달래고 어르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지루했을 수도 있는 긴 항해의 시간을 아이는 승객들에게도 맑은 빛이 되었다.
아이의 손짓 하나가, 칭얼거림 한 조각이 사람들에게 쌓인 항해의 피로와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다.
매일 밤 그녀의 기도는 신의 자비가 자신의 품속 아기에게도 닿기를 바라며 끝을 맺었고,
자신들의 목적지가 올 때까지, 부부는 그녀의 방파제가 되어 주었다.
그들 부부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클라우디아는 제법 능숙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아기에게 우유와 이유식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간 세월이 쌓인 노부부의 주름과 삶의 경험이 녹아 흐른 흰 머리카락처럼
그들은 어떤 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젖먹이와 세상 경험이 없는 어린 그 어미를 돌보는 조력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클라우디아보다 먼저 목적지에 내리는 그들에게 그녀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부부는 아기에게 건강히 자라라는 덕담만을 남기고 하선했다.
차박 차박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자장가로 익숙해진 아기는
제 처지가 서글프지도 않은지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고,
그녀와 아기의 첫 여정이 끝나갈 즈음에는 라사모아와도 제법 거리가 벌어져 있었기에
클라우디아는 불안한 마음을 약간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도시에 발을 디딘 클라우디아는 홀로 세상의 벽에 부딪히며 깨달았다,
라사모아의 성벽이, 세이크리아의 이름이 얼마나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는지를.
젖먹이 아이를 대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몇 안 되는 그 일거리마저도 타지에서 온 그녀에게 호의적인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은 그녀의 우아한 외모에 이끌려 호의를 배푸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끝은 결코 좋은 적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사제의 말투와 신성력으로 인해
사람들의 의심을 사서 겨우 얻은 보금자리를 몇 번이나 옮기기도 했다.
그녀가 챙겨왔던 장신구와 골드는 순식간에 바닥이 났고
어느 정도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그들을 쫒는 황혼의 손아귀를 피해야만 했다.
비록 구스토가 모자를 돕고 있기는 했지만 집요하고 끈질긴 황혼의 사제들은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돌고 돌아 구스토의 편지에 적혀 있던 이름,
알폰스 베디체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남들과 다른 아기의 성장 때문이었을지도.
아기가 자라며 가끔 폭주하는 데런의 힘은 어린 아기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힘이었고,
아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괴로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신성력으로 아이의 아픔을 잠재워주었다.
그녀의 사랑만큼 포근한 신성력은 아이를 할퀴는 고통을 달래 주었다.
힘의 폭주는 아이 스스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다름'을 안고 또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늘 자신 때문에 엄마까지도 힘들게 한다는 미안함을 안고 아이는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따금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클라우디아의 얼굴에는 아련한 미안함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아이가 혹여라도 자신의 그런 기색을 읽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아이가
‘병’으로 괴로워하다 잠든 밤이면 아이의 얼굴을 쓸어주며 홀로 삭였다.
“정말 멋진 그림입니다. 그분께 듣기는 했습니다마는 실제로 보니 놀랍군요.”
그녀의 캔버스를 한참이나 말 없이 쳐다보던 인자함이 넘치는 반백의 노신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보냈다.
예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그의 눈에 그녀의 그림은 자애로움의 현신이었다.
황혼의 감시를 피해서 플레체에 도달한 모자는 알폰스 베디체의 후원을 받으며 잠시 평화를 누렸다.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마을에 새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다.
한동안 손에서 놓아야만 했던 붓을 다시 쥔 그녀를 보며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색색이 고운 물감을 퍼트리며 캔버스 위로 춤추듯 움직이는 붓을 쥔 엄마의 모습을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라보는 아이는 여느 어린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달도 잠이 든 깊은 밤, 깜박이는 랜턴의 희미한 불빛 아래,
클라우디아는 괴로워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
또래보다 작고 외소한 아이의 몸을 부숴버릴 듯 잠식해가는 데런의 힘은
마치 네 기도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다고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고 괴로워하는 아이의 작은 몸에 검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소용돌이쳤다.
식은땀이 흐르는 아이의 이마를 씻어내리는 클라우디아의 손길은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맑고 선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신성력을 비웃듯 데런의 힘은 오히려
그녀의 신성력을 받아먹으며 더욱 강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아이가 곧 이 힘을 이겨내고 눈을 뜨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며 지금처럼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아이의 눈 속에 빛나던 맑은 빛을 믿고 있었다.
“내 소중한 아가, 엄마는 너를 믿는단다.”
아이의 ‘발작’이 길어질수록, 클라우디아의 체력과 신성력도 점점 빠르게 소모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만큼 아이를 노리는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그녀 역시 절망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를 보며 힘을 냈다.
유달리 맑은 눈의 아이는 그녀를 닮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곤 했다.
그렇기에 그녀도 힘을 낼 수 있었건만 오늘 밤은 유독 괴로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가 가진 것에 비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이의 등에 지워진 짐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며 가슴을 쓸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가혹한 아픔에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아이의 호흡이 어느덧 점차 가볍게 변하기 시작했다.
깜박이던 랜턴이 잠들고, 저만치 햇살이 부드럽게 눈을 뜨는 아침이 밝아왔다.
평온한 얼굴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클라우디아는 피곤이 내린 눈을 비볐다.
까칠해진 뺨을 쓸어내리자 지난 밤의 힘 든 시간도 다 같이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한결 편안해 보였다.
들판 여기저기 소박한 들꽃들이 살랑거리는 프리힐리아 마을은
평원에 자리한 따사로운 햇살이 포근한 마을이었고, 넘치지는 않지만 아주 모자라지도 않는 마을이었다.
베디체 가문의 덕으로 안온함을 누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박한 마을이기에 아이들의 작은 소문조차 바람에 실려 순식간에 소용돌이가 되는 마을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녀가 라사모아를 탈출하던 그 밤,
선실 안에서 자신과 아기를 쳐다보던 노부인의 눈빛 속 두려움을 보았다.
이 가엾은 신의 아이들은 군중이란 이름으로 뭉쳐 자신들의 나약함을 감추고 포장했지만,
그것은 편견과 혐오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아무리 로브 자락으로 깊게 가려도 눈에 띄는 외모의 젊은 여자가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우며 번화가에서 떨어진 변두리 외곽 마을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아이를 향한 눈초리들은 늘 의심의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몇몇 남자들은 그녀의 외모에 추파를 던지기도 했고,
또 그 모습을 보는 어떤 여자들은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했지만
긴 세월 도망자의 삶을 살면서도 꺾이지 않은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아우라에 감히 직접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런 어른들의 사정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반항조차 할 수 없는
무방비한 아이에게로 향했고 모자는 그럴 때마다 눈물 없이 울어야 했다.
울 수 없어 웃어야 하는 슬픔이 진득거리며 두 모자를 휘감아도
그녀는 아이에게 미움 대신 용서를 가르쳐주었고, 증오를 대신하여 사랑을 심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란 편견이 찍은 낙인을 견디며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세상의 따스한 사랑을 가르쳤다.
시린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만물을 키우는 여름이 가면 결실의 가을이 오듯,
겨울도 마냥 춥기만 한 것이 아닌 다음 봄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임을 가르치며
그녀, 위대한 어머니는 아이의 가슴을 따듯하게 적셔 주었다.
엄마의 노력과 희생에 화답하듯 아이의 두 눈은 클라우디아가
라사모아에서 처음 눈을 마주친 그때와 다름없이 맑고 깊게 빛나고 있었다.
프리힐리아로 오고 난 후 점점 밝아지는 아이의 표정과 달리 자라나는 데런의 힘은 무자비했다.
가끔 아이의 몸을 부수고 튀어나오려는 듯 요동치는 데런의 기운은
가냘픈 아이의 작은 몸을 파고들어 물어뜯고 할퀴었다.
비명조차 원껏 지르지 못하고 바스라지는 작은 아이를 볼 때면 클라우디아의 가슴에도 깊은 상처 한줄기가 갔다.
아이가 자신의 '병'으로 힘들어할 때면 그녀는 신성력을 조용히 불어넣어 주며
그 고통을 중화시키려 했지만 '병'의 '발작'은 횟수를 반복할 때마다 더욱 강해졌고,
또 그 주기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밤을 깊은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펜을 들었다.
저는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만큼은.
클라우디아가 결심을 하기가 무섭게 그녀는 아이와의 이별을 예견했다.
창 밖으로 저만치 멀리서 일렁이는 횃불들이 보였다. 두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알폰스 베디체를 통해 그녀의 편지가 구스토에게 전해지는 것보다 빠르게
바르디우스 사제와 일당들이 그녀와 아이를 찾아왔다.
그저 자신을 마녀라 수군거리던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어 황혼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어쩌면, 평화로운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그녀와 아이의 눈을 잠시 가렸는지도 모른다.
희망은 어쩌면 제일 잔인한 절망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입가에 살짝 자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기도하고 있는 그녀는 신의 딸이자 순결한 성녀였지만
시골 마을에서 홀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녀는 마녀였고 역병이었다.
다른 가정처럼 남편이 있었다면 어쩌면 마녀 소리는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와 그녀의 소중한 아이에게 씌워진 굴레는 어쩌면 세상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겁에 질린 아이를 지하실에 숨기고, 보호 마법을 걸며 클라우디아는 생각했다,
그녀가 아이와 라사모아를 도망치던 그날도 이렇게 따가운 비가 내렸었다고.
클라우디아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일렁이는 횃불이, 성기사들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횃불을 반사하는 병장기의 소음이
다가올수록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했다. 혹여라도 황혼의 손아귀가 아이에게 닿지 못하게,
아니 하다못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 ‘그분’이 오실 수 있게 그녀는 최대한 오래 살아 도망쳐야만 했다.
저들의 눈이 아이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도록 계속 몸부림쳐야 했다.
황혼의 탐욕스런 손아귀에 먹히기에 아이는 지나치게 눈부신 새벽별이었다.
하지만 별은 홀로 빛을 낼 수 없기에 사랑이라는 태양빛을 잔뜩 쬐게 해주고 싶었다.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산 채로 잡아야 한다!”
저만치 멀리서 바르디우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것도 잠시,
쏟아지는 폭우 사이를 매서운 바람 한 줄기가 쇄 날아들었다.
클라우디아의 몸이 앞으로 푹 꺾였다. 후끈한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차가운 금속의 시린 이질감이 그녀의 몸을 파고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급소를 피해 날아오는 화살촉이 그녀의 몸을 연이어 물어뜯어도 그녀의 다리는 꺾이지 않았고 앞을 향했다.
하지만 처음보다 눈에 띄게 느려진 그녀의 걸음은 냉혹하게 뒤를 쫒는 황혼의 손아귀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역시 배신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게야, 클라우디아!”
더 멀리 도망쳐야 하는데, 그녀는 절벽 위 커다란 나무 아래 무너지듯 몸을 기대며 허물어졌다.
흐릿한 시야는 비가 쏟아져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출혈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녹색 사제복의 인영만큼은 또렸하게 볼 수 있었다.
“쓸 대 없이 힘을 빼더니 고작 이런 최후로구나.”
그녀의 턱에 닿는 검의 차가움과 같은 목소리가 아이의 행방을 물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을 듣자 희미하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다행히 아이는 잘 숨어있는 것 같다.
바르디우스는 그녀의 미소가 달갑지 않은지 그녀의 몸에 꽂힌 화살을 비틀어 뽑으며 제 차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의 피를 머금고 시뻘겋게 변한 화살이 바닥으로 뒹굴었다.
작고 갸냘픈 그녀의 몸에 박혀있던 화살이 빠진 곳에는 선명한 붉은 꽃이 커다랗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길이 닿았던 대지도 붉은 꽃밭이 만개해 있었다.
흐릿해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그녀는 아이에게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해, 아가...”
클라우디아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바르디우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황혼의 열쇠를 가지고 도망친 배신자를 드디어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 있느냐?”
화살이 뚫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배어 나올 때마다,
클라우디아는 숨을 쉴 때마다 기침을 토해냈다.
연신 가슴을 타고 올라온 뜨거운 무언가가 쿨럭쿨럭 기침과 함께 붉게 퍼져나갔다.
입가에 번진 핏자국을 지워 내리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속을 했는데, 하아... 하아... 지킬 수 없을 거 같아요. 우습죠?”
그녀가 입을 열자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길 바라며 바르디우스는 검을 거두었다.
클라우디아의 초점 없는 눈이 그의 검에 비췄다. 심호흡을 하는 그녀의 입술이 다시 달싹였다.
바르디우스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약속 대신...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해줄걸... 흑... !!”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클라우디아!”
바르디우스의 검이 화살이 파고들었던 그녀의 몸에 내리꽂혔다.
그녀가 토해내는 붉은 피가 그의 옷자락에 얼룩졌다. 불쾌하다는 듯 바르디우스는 그녀의 몸을 걷어찼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뒹굴어 넘어지면서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세상을 미워하지 말라고... 한 번 더 안아줄 걸 그랬어요... ...”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 클라우디아를 보며
바르디우스는 쓸모없는 대답은 필요 없다고 소리 질렀다.
그는 바닥에 널부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잡고 마구 흔들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힘없이 떨어지는 그녀의 가녀린 팔 위로 스산한 빗줄기만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나무와 풀꽃조차 우수수 몸을 떨며 몸서리치는 밤,
검은 하늘은 프리힐리아 마을에 벌어진 비극이 슬퍼 우는 것인지,
아니면 그 비극을 덮기 위해 소리 지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세찬 비와 천둥과 번개로 달을 가리웠다.
바르디우스가 눈도 감지 못 한 클라우디아를 마치 오물을 버리듯 그녀가 기대었던 거목에 내동댕이친 그때.
저만치 아래서 병사 몇 명이 옅은 미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아이를 우악스럽게 끌고 왔다.
작고 여린 아이는 초식동물처럼 큰 눈을 깜박이며 우악스런 병사들의 손에 난폭하게 이끌려 바르디우스의 앞에 세워졌다.
아이의 맑고 푸른 눈동자 한가득 클라우디아의 모습이 담겼다.
도망자의 삶 속에서도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은 회색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며 움츠러들었던 아이는 하얗게 질려 자신의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의 시신 뒤로 불타는 마을의 전경이 보였다.
여기저기에서 사제병들의 손에 끌려 나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마가 혀를 날름거리며 마을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는 모습이,
어린 소년의 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엄마의 창백한 뺨이,
그 모든 것이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늪이 되어 작은 몸을 휘감았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점차 빨라지고, 누군가 아이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증오해라 - 원망해라 - 미워해라 - 모든 것을!
슬픔, 불안, 절망, 공포, 혼란, 분노
온갖 부정의 감정들이 아이의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며 휘몰아치는 그 순간,
아주 잠시 아이의 뺨에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늘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엄마의 온기,
포근한 아침 햇살의 향기가 담긴 엄마의 손길이었다.
분명 눈앞에서 여전히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엄마였지만 아이의 뺨을 만져준
그 다사로운 손길도 엄마의 그것이었다.
‘미워하면 안 돼.’
붉게 물들어 흐릿해져 가던 시야가 걷히고, 몸을 옭아매던 고통과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익숙하고 다정한 엄마의 향기가 빗물에 씻겨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선명하게 아이의 귓가에 흐르고 있었다.
‘넌 엄마의 모든 것이야!’
저만치 멀리서 눈부신 빛과 함께 나타난 교황 구스토의 모습이 보였다.
심판하라- 그의 손짓 한 번에 찬란한 빛의 장막이 프리힐리아 마을을 덮었다.
무자비하게 마을 사람들을 도륙하던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더니 이내 바르디우스조차 바닥에 널부러졌다.
조용히 아이의 곁으로 다가온 구스토의 손길이 훌쩍이는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클라우디아의 몸에서 차갑게 비를 맞던 검이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아이는 슬픔을 품었지만 아픔은 털고 엄마의 시신 앞에서 일어났다.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죽었다며 절규하는 아이의 애끓는 목소리만이 헛헛하게 맴돌았다.
네 잘못이 아니라며 다독이는 교황의 손길은 여느 할아버지의 인자한 손길과도 같이 따스하게 아이의 마음을 보듬었다.
눈물을 닦고 일어서 구스토와 함께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은 엄마에게 길게 그림자로 드리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미소 짓는 클라우디아는 언제나 아이의 곁에 있음을 아직 아이는 알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슬픔을 털어냈다면 들을 수 있었을까? 나지막하게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아만, 엄마는 너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단다.
엄마는 다시 돌아가도 반드시 너와 함께할 거야, 사랑한다.’
그때의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버린 아만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서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무덤 주변에는 그리운 그녀의 미소처럼 고운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도 같은 부드러운 바람이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그는 누군가가 이곳에서 백 일간의 기도를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저만치서 자신을 보고 달려오는 사람,
한때, 그토록 그가 가기를 원했던 빛의 길을 걷는 사람,
하지만 절대로 그는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 그리고 그를 친구라 불러주는 사람,
아만은 그를 믿어보기로 선택했다.
‘아만, 아무리 어두운 밤도 반드시 그 끝은 새벽을 가져온단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문득 아만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아만은 자신에게 전해준 그 빛을 길잡이로 삼아
어두운 밤을 함께 지나갈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처럼 세상의 어둠에 흔들리는 이들을 위하여 나아가리라 생각했다.
“... 오셨군요, 모험가님.”
반가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만은 참 힘들게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씁쓸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었지만 아만은 자신을 사랑해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클라우디아의 손길이 그를 어루만지는 것만 같은
포근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지나갔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그의 눈에도 맑은 새벽의 여명이 빛나고 있었다.
아만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마치 클라우디아의 그것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