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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운명의 빛 팬픽 조각모음:시간 걸어


이 글은 로스트아크 공식설정과는 일절 상관이 없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사색했던걸로만 썼음을 양해바랍니다

즉흥적으로 쓴거라 서사무관하게 조각모음처럼 되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써서 이정도가 한계네요

하지만 아만에 관해서는 꼭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0.

몇년이나 헤어져 있었기에, 누구보다 간절히 찾아헤맸기에 나누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을텐데도

의외로 서로가 묵묵히 하루하루를 지나보냈다.

아침에는 섬을 정화하는 사제들을 돕다가 말없이 뒤돌아갔고,

밤에는 쿠르잔이 보이는 터 아래 모닥불을 피우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진들을 보고서 떠나보내곤 했다.

평소와 같은듯 아닌듯, 실감이 나는듯 흐릿한듯.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0.5

지켜야 할 사람들, 친구들과 동료들의 존재는 텅 빈 메아리를 비명으로 만들어 한층 더 크게 울려왔다

새로운 누군가가 그의 마음속 도화지에 소중히 그려지면 그려질 수록, 찢겨진 부분이 아픈데도 움켜쥘수도 없어 손바닥으로만 그저 가렸다.  

왜 넌 혼자인거지. 어째서 너의 옆에는 카마인 한 명 뿐인거야. 너한텐 그걸로 분한거야?

넌 이런걸 원했을지 몰라도 난 아니야. 

왜 날 미안하게 만들어? 난 이렇게 절박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미워.    


#1

그랬기에 카마인을 적인데도 온전히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적인지 아군인지 그 의중을 뚜렷히 알 수 없는 그의 비아냥거리는 행동거지가 

적보다도 미워하기 충분한데도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못한 일을 대신 해주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카마인은 몰아치는 폭풍 속 그의 친구에게 다가온 하나뿐인 동앗줄이었고 

혼자가 아니게 해준 유일한 자였다.

그것은 살면서 적에게 처음으로 가진 수치심이었다.


#1

그래,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에게 아만은, 다시 찾은 친구는 너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결국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리도 서툴리 흘러가는 매일매일이.

같이 섬을 정화하는 사제들을 돕고, 밤하늘 아래서 책을 읽다,  지난날 남겨진 사진들만 바라보며

그렇게 끝나버리는, 

누군가 얼핏 보기엔 어색한 사이라 여겨질지 모르는 이 점점한 하루하루가 

지난 몇년을 같이 남겨진 또다른 친구와 나눠왔던 유대감이고, 함께 찾아왔던 햇살이었다고


아직 왕의 기사조차 아니었던 시절, 찬란하지 않았고

예전 선택받은 자가 아니었던 시절, 아무것도 아니어 

그저 무명이고 이름없었던, 몸뚱이뿐인 모험가.


그랬던 자신이 아만이라는, 당시의 그에겐 빛나보이던 사제와

내달리는 마차에서부터 거쳤던 모험들은 얼마나 어린아이 끄적임 같았던가

지금에 와선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장난같았던 순간들의 끝에 

심장을 뜷고 소금길을 걸어, 성벽을 타고 씨앗을 심었더랬다

싹이 트라고, 자라나라고

너에게 열린 열매를 함께 먹겠다고

  

그러니까 된거야

아무것도 아닌거면 그걸로. 


자란 나무가 열매를 맺어 나에게, 너에게 말을 해. 

언제가 아크라시아에 빛을 찾게 될 그 날이 온다면....

너와 나, 실리안까지 함께 못다한 모험을 끝맺을 그 날이.


그러니까...


졸음에 꾸벅꾸벅 눈이 감겼다.

어느새 옆에 있는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진줄도 모른 채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선잠에 빠져들었다.

평소처럼, 언제나 그랬듯 그렇게.


#2

'아만. 이젠 괜찮니?'

어딘지 모를곳에서 들려오는 물음에 아만은 주머니 속 묵주를 한 손에 으스러질듯 꽉 쥐었다.  

그 날, 비바람과 함께 쓸어보냈을 터였다.

이렇게 사제들을 도와 실마엘에 오염된 주물들을 정화하며 하루가 다 지나면

저무는 석양이 푸른 구름에 섞여 퍼지는 보랏빛에 녹아 잠시 몸을 뉘이고

조각처럼 지나간 잠의 끝에 어두워진 밤 너머로 맥동하는 쿠르잔의 화산을 바라보는 평온한 일상들을.


"....불안해요"

그렇게, 지켜내지 못한 생명들과 함께 떠내보냈을 터였다.

모닥불 앞에서 등을 맞댄채 같은 책을 읽다가, 다음 날을 기약하며 접어두고

말없이 그가 보여주는 사진 속 낮선 곳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제 어깨에 기대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행복한 찰나들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렇게.

그리 바래웠던 저 모든 것들을, 그 날 벗어버린 사제복과 함께 두고왔을터였다. 

자신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저 하늘 위의 구름은 엄청 높은 산에 올라가면 잡을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그림일기 속에 적던 어머니의 아만이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하지만 괜찮아요"

이번에야말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렇게.

불과 죽음으로 시작된 그 날 이래 줄곧, 언젠가 반드시 다시 올 날 만을 곱씹으며 쥐어왔던 손을 펼거라고

다시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와버린 순간의 앞에서, 저승사자처럼 마중나왔던 그 악마를 따라가는 일 같은건 없을거라고


앞으로 닥쳐올 모든 운명들을, 이 땅의 사람들과 걸으며 잡을 수 있을거라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빛이 있었던것처럼, 내 마음속에도 웅크리던 빛을 찾아준 친구들과 움켜쥐어보겠다고 

그러니까


"전 행복해요, 엄마."

왠지 모르게 눈이 감겨들었다.

두 눈을 다 감았는데도, 어째서인지 햇살처럼 피어오른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사뿐히 뒤돌아, 떠나갔다. 


번뜩, 눈을 뜨니 저 너머로 쿠르잔의 땅만이 보였다.

한밤 벌레우는 소리도 없이, 눈 앞에선 그저 모닥불만 기세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만은 천천히 주머니 속 묵주를 쥔 손을 펼쳐, 하늘 높이 뻗어올렸다.

피어오르는 연기 저 너머로 재를 흩날리듯, 무언가를 놓아주듯, 

흩뿌려진 별들에 향하는 소리없는 손짓은 마치 작별인사같았다  


문득 밝은 별 하나가 민들레 홀씨처럼 나풀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만의 어깨에 기대어 자던 모험가가 끙끙이며 뒤척였다.

아만은 뻗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쿠르잔으로 시선을 향했다.

평소처럼, 언제나 그랬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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