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이에오(3)

루안과 아르테미스를 출발해 아크라시아 여행을 떠난지도 어언 2개월이 되었다.
아르테미스에서 평화로웠기에 여행도 그럴 줄 알았다.
아르테미스를 떠난 뒤부터 쉬지 않고 애니츠까지 왔다.
사실 나는 평화롭게 배를 타고 유유자적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아니었다.
시야가 잘 닿지 않는 수풀이나 그림자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마물들, 가끔씩 허공에 생긴 새카만 회오리에서 거미 알집에서 새끼거미가 터져 나오듯 쏟아지는 악마들을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루안이 모조리 해치웠고, 나는 주변 정리를 도왔다.
상태창이나 스킬창, 아이템창이 모두 잠긴 상태였지만 여행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기에 주변 정리라도 도울 수 있었다.
“아오! 공격력! 최대 생명력! 치명! 특화! 신속! 제인숙까지! 이런 건 적용이 되는데 왜! 다른 건 안돼냐고! 왜!”
퍽! 끼에에엑!
퍼퍽! 케에에엑!
루안이 여행 출발 전에 내게 준 훈련용 검을 휘둘러 몬스터들을 패며 기함한다.
비록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텟이라도 적용이 되어서 다행이긴 했다. 이거라도 적용이 안 되었다면 자책에 짓눌려 루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면서 짐덩이 그 자체가 되었을 테니까.
“로인.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몬스터와 악마를 상대하는 와중에 루안이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검은 휘둘러 베는 것이다. 패는 것이 아니라.”
“베던! 패던! 일단 죽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루안이 덩치가 큰 몬스터나 악마를 상대하고, 나는 좀 작은 일명 쫄몹을 상대하는 것으로 분담했다.
그렇게 쭈욱 쉬지 않고 애니츠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루안은 쉬지 않았다.
“우리 방금 막 일어나서 나왔어요. 아침이라도 먹고 움직여요.”
“알겠다.”
“만두 사러 갔다올게요. 루안이 준…”
거기까지 말하자 순간 숨이 가빠져 씨근덕거리는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모험의 서라는 걸 만들었는데, 잘 이용해줘서 기쁘군.”
방긋 웃는 루안의 얼굴에 차마 주먹을 날릴 순 없어서 꼭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숨긴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안은 뿌듯하다는 걸 온몸으로 티 내며 내 손에 실링을 쥐여준다.
“그 동안 나는 혼재의 추오를 함께 토벌할 인원을 구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갔다오게.”
루안의 환한 미소는 아름다웠지만 불안감이 연기가 나듯 자꾸만 피어오른다.
“알겠어요. 그럼 만두 사 와서 만두 먹고 소화 좀 시키고 출발하면 되겠네요.”
아니면 오늘은 좀 통으로 쉬고 내일 가던가.
뒷말은 굳이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삼킨다. 루안이 일정이 빡빡하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그렇지. 오늘 여기까지 하고 푹 쉬면 내일 사람 모집 안 하고 둘이서 충분히 잡을 수 있으면서 왜 무리를 하는지.’
푹 쉬고 내일 잡는다고 해도 거의 루안 혼자 잡아서…… 동료가 있으면 싶긴 하겠다.
문득 밀려오는 씁쓸한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속으로 삼키며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만둣집으로 향한다.
***
루안의 몸 보신도 있겠다 만두 외에도 사슴 뒷발굽 전골도 푸짐하게 사고, 간식으로 먹을 행운의 포츈 쿠키도 잔뜩 샀다. 아이템은 못 써도 인벤토리는 사용할 수 있어서 실링은 쓸 수 있었다. 이에 여행을 다니면서 부족한 경비를 야금야금 내 실링으로 사용했는데 그럴 때마다 루안이 수상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아마 이번에도 루안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겠지만, 그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대충 저렴하게 팔더라…로 얼버무리면 끝날 일. 나는 전골에 만두를 찍어 먹을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해 달려갔다.
루안이 맛있게 먹을 걸 상상하며 달려간 그 끝에는 거대한 팻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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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재의 추오] 토벌 같이 하실 분 구합니다.
애니츠 등나무 언덕에서 산적 고참, 뒤틀린 사술사의 유령, 기괴한 목각인형 등 이외에도 고위 몬스터 토벌 경험 다수 있음
델파이 현에 있는 만월의 고택, 등나무 언덕의 폐가 등 인내와 숙련을 요하는 탐험 경험 다수
기사 출신으로 전투 숙련, 몬스터 토벌 숙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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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내 손에 들린 봉투가 스르륵 떨어져 땅으로 처박히자 봉투가 터지며 땅바닥에 만두가 굴러다니고, 퍽 소리가 나며 전골 그릇이 깨져 국물이 땅바닥을 적신다.
“루안! 미쳤어요?!!!”
소리를 빼액 질러놓고, 주변을 자각하고 앗차 싶어 후다닥 루안에게 달려가 그의 손목을 붙잡고 근처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간다.
“미쳤어요?! 내가 저 ‘숙련’ 저 단어 쓰지 말라고 했죠? 쓸거면 ‘업둥이1’ 쓰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숙련은 무슨 숙련이야! 나는! 나는 너처럼 못한다니까?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미 내 눈빛과 얼굴이 그걸 말하고 있었는지 루안이 베시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걱정말게. 내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도 이젠 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에 꽤 익숙해지지 않았나. 충분히 숙련이라고 볼 수 있네.”
미*친* *새*끼*야… 그건 숙련이 아니라니까.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내가 눈을 부라리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루안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더더욱 환하게 웃을 뿐이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그대가 일행 뒤에서 버프를 주는 척하면 그에 맞춰서 내가 중간중간 신성력을 써보겠네.”
“……”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안되겠다.
나는 루안을 그대로 두고 루안이 대문짝만하게 써 놓은 팻말을 들고 왔다.
“루안. 여기 앉아봐요.”
아무래도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 루안을 앉혀 놓고 나도 마주보고 앉았다.
“왜 그렇게 조급해 해요? 돈? 돈이 문제에요? 아니면 뭐 더 좋은 장비가 필요해요? 이것도 아니면 누가 쫓아와요? 여행이라면서요. 근데 왜 그렇게 혼자 조급해 해요?”
내 질문에 루안의 환했던 표정이 점차점차 가라앉고, 그에 따라 그의 시선도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여행이긴 하지만, 너의 일행도 찾는 것이니 조급할 수밖에.”
루안이 손을 깍지 껴 꼼지락거린다.
“그래도 조금만 더 수소문하면.”
수소문? 거기까지 듣자 문득 이해가 되는 것 하나가 떠오른다.
“왜 그렇게 길드에 들락거리며 몸을 혹사해가며 의뢰를 받나 했더니.”
내 말에 루안이 고개를 다급하게 젓는 것도 부족해 양손을 저으며 부정의 표시를 드러낸다.
“아니다.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사람을 찾아야 해서.”
“그게 결국 돈 아니에요?”
그렇다. 사람을 찾으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사람을 고용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루안은 내 일행을.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거나 다름없는 걸 하고 있었으니……
“언제부터에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바닥만 보고 있는 루안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널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지만 꾹 참는다. 그는 사실 나만 없었으면 편하게 레온하트 성당에서 기사를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재수없게 나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이니. 한숨을 쉬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루안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루안을 살폈다. 루안의 얼굴, 팔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 곳곳에 상처의 흔적이 보인다. 아이템창이 열리면 당장이라도 정령의 회복약으로 샤워를 시켜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씁쓸할 뿐.
“알겠어요. 이제 왜 루안이 조급해 했는지도 알았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 말에 루안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 짓는다. 그러자 마치 그에게 후광이 비치는 듯해 눈이 부셔서 순간 시선을 회피했다. 저렇게 웃으면 심장 떨려서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크흠. 일단 일행 찾는 거 그만둬요.”
“하지만.”
“어차피 조만간 나타날 거예요. 루안이 그렇게 애써서 찾지 않아도 나타나니까 무리하지 마요.”
단호한 내 말에 루안이 할 말이 많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더 이상을 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루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여행 다니면서 아크라시아 구경을 하면 되는 거예요. 내 실링 팍팍 쓰면서. 그러면 영웅이 나타나 알아서 다 해 줄 거라구요.”
“그게 무슨……”
루테란이라는 영웅이 파티원 모집해서 알아서 다 해결해 준다구요.라고 당장에 외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돌아오는 건 어떻게 아냐는 질문만 돌아올게 뻔해서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이내 루안이 마지 못해 납득하는 척 대답했다.
“알겠다. 너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고마워요.”
이에 루안이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근데 네 실링을 팍팍 쓰면서라니. 그건 무슨 말이지?”
“사실 말 안 했는데. 나 부자에요.”
나는 내 전 재산을 루안에게 솔직하게 털어놨고, 그 말을 들은 루안은 액수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각자 털어놓을 걸 털어놓아서 그런지 우리 둘 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이제 슬슬 가요. 머무를 곳은 좀 고오급 진 곳으로 잡고.”
“흠. 생각해 봤는데. 애니츠에 내 친구가 있어. 그 친구한테 만나러 가겠다고 미리 연락도 한 상태니 가서 며칠 그 친구의 집에 머무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루안이 지도를 펼쳐보라는 손짓을 하기에 나는 서둘러 지도를 펼쳤다.
그가 황혼의 연무의 구름 협곡 근처를 가리켰다.
“아마 여기서 수련을 하고 있을 거야. 친구가 있는 곳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네? 여기…… 장천 낚시터인데… 거리가 얼마 안 된다구요?
거기까지 들은 나는 루안이 그 뒤에 어떤 말을 할지 알았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실링을 꺼내 들었다. 이런 건 루안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걸어서…”
“마차 타죠.”
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낚시터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마차 대여 상인에게 가서 화려뻑쩍지근한 마차를 뽑아왔다.
들어는 봤니? 육두마차라고.
“타시죠. 루안.”
나는 손수 마차의 문을 열고, 루안의 손을 잡아 에스코트 했다.
황혼의 연무로 가는 동안 마차에서 루안의 표정을 심히 좋지 않았지만,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했다.
“이렇게 부자인 걸 알았으면 처음부터 편하게 갈 것을……”
루안의 새침한 혼잣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나올 뻔한 걸 꾹 참았다.
***
“반갑네. 시엔일세.”
“아. 시엔 님 이시군요. 저는 루안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로인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는 루안과 시엔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근처에 세워진 정자로 가 앉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익숙한 이름인데.”
익숙한 이름 때문에 자신을 시엔이라고 소개한 남성을 계속해서 보게 되었다.
하나로 올려 묶은 머리, 큰 부상을 입었는지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한쪽 팔, 애니츠 특유의 각 잡힌 등 근육, 애니츠 특유의 멋진 팔뚝, 애니츠 특유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뭔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상황에 나는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시엔. 시엔이라. 시엔. 완전 익숙한 이름인데.”
근데 뭔가 좀 허전한데? 뭘 더 붙여야 할 것 같……
퍼뜩 떠오르는 무언가에 등골에 서늘함이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쓰읍. 침을 삼키며 불안감을 목구멍 너머로 함께 삼키려는데, 도복을 입은 한 청년이 달려온다.
“에스더 시엔 님! 친구분들께서 머무를 방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세상…… 참 좁다……
로아에 들어온 지 11개월 만에 나는 로스트아크 스토리의 메인 주역들 중 한 명을 만났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침대에서 홀로 계획을 세웠다.
일명. 엑스트라 원,투는 사슬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라는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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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에 꽂혀서 써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