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불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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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제. 페데리코 사제는 마치 종이에 빈 손가락 상처처럼 약을 바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고 하찮지만 번번이 따갑고 짜증 나는 존재였다.
모험가가 페이튼에 갔다는 소식이 들리거나, 페데리코 사제와 접견 일정이 잡히거나 하면 실리안은 예민해졌다.
심지어 어릴 적부터 교육받고 자신 스스로도 노력해 단단하게 쌓아올린 왕의 몸가짐과 마음조차 그때만큼은 여지없이 금이 갔다.
그런데 오늘. 모험가에게 강제로 약조한 방문의 날과 세이크리아의 접견이 겹쳤다. 세이크리아 접견이라 성국에서 보내온 접견 명단을 미리 확인해 두었기에 안심하고 모험가도 함께 접견실에 세운 것이 오판이었다.
“사제 페데리코. 루테란의 국왕을 뵙습니다.”
분명 플레체에서 교황을 찾고 있어야 할 자가 제 눈 앞에 성국의 사자랍시고 나타났다.
실리안은 페데리코의 인사를 받으며 곁눈질로 모험가를 보았다. 모험가는 페데리코 사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그걸 본 실리안은 분노로 뒤집히는 속을 견고한 이성으로 내리누른 채 접견을 시작했다.
“성국에서 보낸 접견 명단엔 페데리코 사제, 그대는 없는 걸로 알고 있네.”
“죄송합니다. 미리 언질을 드렸어야 했으나…”
페데리코 사제가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실리안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실리안의 모든 신경은 곁눈질로 보고 있는 모험가의 반응에 쏠려있었다. 페데리코 사제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 꼴이 실리안을 미치게 만들었다.
실리안은 제 얼굴에, 표정에, 왕의 마음가짐에 금이 가는 걸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이성은 꽤 견고하고 단단해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걸 막아주었다.
세이크리아와의 접견은 며칠 동안 이어질 것이었기에 실리안은 접견 첫날 일정을 계획보다 빠르게 마무리했다.
물러가는 페데리코 사제와 눈인사를 나누는 모험가를 보는 실리안의 머리엔 서늘한 분노가 내려앉고 있었다.
주변을 모두 물리치고 모험가와 실리안 둘만 남은 접견실에는 고요와 썰렁한 공기가 가득했다. 고요를 깬 것은 실리안이었다.
“그래. 페데리코 사제와 인사는 잘 했는가.”
실리안의 서늘한 목소리에 모험가가 움찔하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실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험가에게 다가갔다.
모험가는 무표정으로 다가오는 실리안에게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꾹꾹 내리누르는 듯한…
게다가 분명 저와 비슷한 키일텐데도 이상하게도 오늘은 실리안이 훨씬 커 보여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한한 신뢰와 따뜻함을 담고 있던 황금색 눈동자는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잔인함과 포악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과 마주치면 이상하게 모험가는 독수리의 발톱에 꿰인 먹잇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낯선 실리안의 모습에 모험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한편 실리안은 자신이 다가갈수록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모험가의 모습에 분노를 내리누르고 있던 이성이 결국 무너지고야 말았다.
“호랑이 **가 제 주인을 몰라보면. 응당 교육을 시켜야겠지.”
이제는 공포로 사색이 되다 못해 얼어붙은 모험가를 향해 실리안이 손을 뻗었다.
***
이후 모험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상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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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는 건가?”
예기치 못하게 들린 소리. 그것도 등 뒤에서 가깝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앉은 채로 펄쩍 뛰어올랐다.
“시…시…실리안??”
너무 놀라 굳어버린 몸을 겨우겨우 돌려 뒤를 돌아보니 실리안이 서 있었다. 화사한 미소를 얼굴에 살짝 걸치고 신뢰와 관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다가오며 고개를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하며 내가 보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몸을 최대한 있는 힘껏 부풀려 책을 가린 채 거세게 책을 덮었다.
콰앙!!
얼마나 세게 덮었는지 펜꽂이가 쓰러져 펜이 책상 위로,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얼마나 세게 덮었는지 갑자기 등장한 실리안 때문에 뜨거운 독서 시간을 방해 받은 것에 분노한 심장이 폭주하듯 뛰었다.
“이런. 놀래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하게 됐군. 여러 번 문을 두드리고, 심지어 몇 번 부르기까지 했는데도 자네가 반응이 없어서… 정말 미안하네.”
실리안이 미안하다는 걸 온몸으로 표출하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이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내가 읽고 있던 책이다.
“힉! 그냥… 그냥! 모험기야! 애니츠 무인이 주인공인 모험기!”
나는 대충 아무 말을 지껄이며 책을 숨길 만 한 곳을 눈으로 열심히 찾았지만, 맑은 하늘에 예고 없이 내리친 벼락처럼 등장한 실리안 때문에 당황함과 부끄러움, 혼란함 등의 감정으로 뒤범벅이 된 나는 책상에 달린 서랍의 존재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일단 급한대로 양팔로 책의 제목을 가렸지만, 실리안의 눈이 더 빨랐다.
“근육 빵빵 애니츠 모험가의 아흐흫 모험 이야기.”
그 순간,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아. 제발… 소리 내서 읽지마… 미치고 환장할 것 같으니까…
실리안의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가 읽어주는 제목은 정말이지 다른 의미로 미치고 환장하게 귀에 쏙쏙 달라붙었다. 아니, 달라붙다 못해 녹았다.
“아! 요즘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모험 소설인가? 나도 보고는 들었네. 요즘 자네의 모험을 기반으로 하는 모험 소설이 유행한다더군. 근데 꽤 과장되거나 허황된 내용도 있는데 오히려 사실적인 내용보다 그게 더 인기가 좋다는 보고였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뿌듯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실리안의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실리안은 모른다. 실리안은 이 책이 무슨 책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에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쓰윽 머리를 넘기는 척 닦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그래서 나도 책방에서 빌려왔어. 저…저저점원이 추천. 추천! 해주더라고.”
실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더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뭔가?”
정말이지 티끌 하나 없는. 송아지처럼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내려다보며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실리안을 보며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제목이 저따구인데 뭘 물어봐……
“으응. 그게.”
요즈 인생 400살. 최대의 위기다.
나는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할 거리를 찾았지만 불가능했다.
책 내용이 제목처럼 근육 빵빵 애니츠 모험가의 아흐흣! 모험 이야기인데… 뭘 어떻게 대답을 해……
떨리는 동공을 다잡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 말을 지어내려고 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그때 실리안의 팔이 쑤욱 내 옆을 지나치더니 책을 들어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그가 표지를 넘기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눈앞에 번쩍이더니 기가 막히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마지막 페이지만큼은 안전하리라.
“실리안!! 이건 마지막 부분이 되게 좋데! 다들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더라고!”
아 그런가?
울부짖음에 가까운 내 말에 실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빛내며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그리하여 아크라시아의 유일한 존재마저도 손에 넣은 왕은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끼며 허리를 숙였다. 입술에 닿는 그의 귀를 깨물고는 나른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나의 작은 아기 호랑이♡’]”
실리안이 거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실리안의 손에 있는 책을 낚아채 방 한쪽에서 항상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마법 난로를 향해 집어 던졌다.
책이 활활 타오르는 걸 보았다.
뒤를 도는 대신.
책이 끝까지 타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