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이에오(4) 새 글

루안이 펜을 든 손을 멈칫하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경험과 숙련 사이'라고 적었다.
그걸 본 순간, 난 조용히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래. 바로 지금!
"루안. 긴장을 해소하는 약을 좀 사다줄 수 있어요? 시그나투스 잡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에 갑자기 배가 아파와요...."
나는 배를 움켜쥔 채 숨을 참아 얼굴까지 벌겋게 만들었다. 내 안색이 붉게 변하는 걸 본 루안이 모집글을 쓰다말고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여기. 여기 앉아 있게. 얼른 다녀오지."
"루안... 천천히 갔다와요. 때마침 근처에 호버보드 시험장이 있어요. 거기 가서 호버보드 빌리고 그거 타고 가면 될 거에요."
말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루안의 손에 실링을 쥐여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루안은 금방 갔다오겠다며 얼른 쉬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내가 말한 호버보드 시험장 쪽으로 달려갔다.
루안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루안이 쓰다만 모집 공고의 몇몇 글자를 찍찍 긋고 수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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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투스] 토벌 같이 하실 해주실 분 구합니다.
토벌 숙련도는 경험과 숙련 사이 완전 숙련자
보수-인당 1만 100만 실링
총 2명 4명 모집
토벌 성공하면 추가금 50만 실링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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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하고 내용을 추가해서 팻말을 세우자 순식간에 주변이 술렁인다. 쉽게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의외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리며 눈치만 볼 뿐 나서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슬슬 루안이 돌아올 시간이기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버스기사!! 내가 이러려고 돈 모았어!!
“토벌 해주실 분 구해요! 보수 100만 실링 먼저 드리고, 시그나투스 잡으면 50만 실링 추가로 드려요!”
어떻게든 루안이 오기 전에 모아서 보내야 했다.
안 그러면 루안은 저 빌어먹을 ‘경험과 숙련 사이’에 검을 휘둘러 베는 게 아니라, 휘둘러 후드려 팰 줄만 아는 나를 끼워 갈 거였다.
마음 같아서는 루안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기절이라도 시키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일전 시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신성력을 가져서라나 뭐라나 어떻게 해도 기절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등골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로아에서 이름 하나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가 뭐 이렇게 강해. 파워 밸런스 미쳤나고....”
“토벌!! 구해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지만 사람만 몰릴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내가 하지. 대신 끝나고 한 잔 하는 거 어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기계손에는 에크혼 S 알파가 들려 있었다. 남자의 무기를 보고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루안이 보였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100만 실링이 담긴 자루를 그의 품에 찔러넣다시피 건네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가요. 빨리!”
나는 그의 품에 와그작 구긴 팻말까지도 함께 ** 넣었다.
애석하게도 루안이 더 빨랐다.
“누구지? 아, 혹시 시그나투스를 토벌에 지원한 지원자인가? 고맙군.”
아...내 100만 실링....
루안이 그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루안이네.”
“파비안.”
남자는 담백하게 이름을 말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욕이 나왔다. 사내 ** 둘이서 손 잡고 잘 쳐웃네....
그때 툭. 하고 파비안의 품에서 구겨진 팻말이 나왔다.
내가 서둘러 주우려는데, 파비안이 구두로 밟는 게 빨랐다.
“4명을 구하던데, 총 6명이서 가는 건가?”
파비안이 허리를 숙여 구겨진 팻말을 주워들더니, 쫙쫙 펴서 루안에게 내밀었다.
당혹스러움에 내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인당 100만 실링...이라....”
루안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미소가 사라진 무표정에 서늘한 눈빛으로 루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험의 서를 펼쳐 아르데타인을 살피는 척 얼굴을 가렸다.
내가 기억하는 루안의 월급이 10만 실링이었다.
모험의 서를 뚫고 느껴지는 그의 서늘한 눈빛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엑스트라가 쓰잘데기 없이 강한 빌어먹을 파워 밸런스 똥망 겜....
이와중에 파비안이라는 사내가 툭, 말을 던졌다.
“시그나투스 토벌은 셋이서도 충분할 거 같은데. 끝나고 술 한 잔 어때?”
‘저 새끼는 할 수 있는 대사가 ‘술 한 잔 어때?’ 말고는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그렇게라도 말을 해준 게 고마웠다.
“슈테른의 주점 가죠. 내가 살게요.”
파비안을 방패 삼아 루안의 서늘한 눈빛을 피하며 빠르게 말했다.
당분간 루안이 나에게 검술을 혹독하게 훈련시킬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몸을 떨며 나는 서둘러 앞장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