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기다리겠네.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 성실한 친구
*전체적으로 로스트아크 설정 파괴 있습니다.

4화 : 성실한 친구
베른 남부에서의 대전쟁 이후의 마무리까지 모두 완료 했다. 큰 스토리 하나를 마무리했기에 며칠이라도 휴가를 갈까 했지만, 퀘스트창이 계속해서 반짝이는 것과 더불어 때마침 엘가시아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이는 니나브가 부담스러워 빨리 가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험난하고 고된 여러가지 여덟가지의 고난을 이겨내야 엘가시아에 도착할 것이 괴로웠지만, 가서 빛나는 미인 라제니스들을 볼 걸 생각하니 어느 정도 감수할 힘은 생겼다.
여왕을 알현하고 나와 베른의 상업 지구로 향한다.
"사과 주스 하나.... 아니 두 개 주세요! 그리고 둘 다 얼음 추가요!"
베른의 여왕 에아달린이 마시고 싶다고 했던 음료. 내가 예전에 퀘스트를 밀 땐 동기화 100% 전이어서 별 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눈을 떠 봐~ 동기화로 완전히 달라진 나~ 모험의 서 요리 독파해 달라진 나~"
"여기 있었군."
"아잇 시파! 개깜짝이야!!! 헉! 실리안?!"
기분 좋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박자에 맞춰 엉덩이도 살짝살짝 흔들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옆에서 쑤욱 튀어나는 형체에 깜짝 놀라 격한 단어가 쏟아져 나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실리안을 비롯해 미한, 하셀링크, 칼스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서둘러 변명을 하려는데, 실리안이 나보다 먼저 이렇게까지 놀랄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래. 실리안. 진짜 놀랐어."
"대신 내가 사과 주스 값을 치르지."
"응? 아냐. 내가 마실 건데. 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내가 살게. 나 실링 부자야. 사장님! 사과 주스 얼음 추가해서 네 잔 더요!"
실리안이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고맙게 받겠네."
"근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루테란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자네를."
"여기 음료 여섯 잔 나왔어요. 어머나. 어쩜 이렇게 빛나는 얼굴들만 모여있지. 이러기도 힘든데. 아유. 미남에, 훈남에, 중후한 댄디남에 미소년에... 성실해 보이는 친구도 있구. 오호호호. 맛나게들 들어요~"
저기요. 사장님. 설마 제가 성실해 보이는 친구인가요?
사과 주스를 잡은 양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풉."
"푸훕."
"큽. 아흠. 큽흡."
부들부들 떠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내 옆에 선 실리안은 한 손으로는 사과 주스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쥐고, 입술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미한, 하셀링크, 칼스는 뒤돌아 있어서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어깨가 춤을 추는 걸로 보아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너무 웃는 거 아냐?"
"아. 아닐.. 큽! 아닐세헤. 큽흡."
실리안을 흘겨보며 근처 그늘 진 벤치를 찾아 이동한다. 그 사이에 실리안은 세 사람을 보내고 혼자 따라오고 있었다.
"크햐! 맛있다! 와. 이 맛있는 걸 베른에서만 먹는단 말야? 나빴네."
첫 잔은 원샷하고, 두 번째 잔은 아껴 먹는다.
"자네가 잘 먹는 걸 보니 좋군. 내 것도 마시게."
"실리안도 마셔 봐. 베른까지 왔는데, 마셔봐야지. 그리고 맛있으면 루테란에 수입을 하면 되잖아. 그럼 내가 루테란에 갔을 때 맛나게 마실 수도 있고!"
"그렇군. 내 생각이 짧았군."
얼굴이 살짝 붉어진 실리안이 미소지으며 주스를 마신다.
나무 그늘 아래인데도 뽀얗게 빛나는 피부와 금발, 그리고 사과 주스를 삼키는 그의 목울대.
그의 얼굴과 꿀럭이는 목울대 곁눈질하며 주스를 쫍쫍 마신다.
'잘생겼어... 빠...빨리 무도회 퀘스트 받아야 겠다.'
앗.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무도회장의 결말이 떠오른다.
젠장... 그래도 동기화 100%이니 키스 정도는... 아니 뽀뽀 정도는 노려본다.
이런저런 욕망에 가득 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손길이 느껴진다.
"벌레가 떨어졌군. 차라리 잠깐 걷겠나?"
실리안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조의 가도를 향해 걷는다.
실리안과 함께 걸어 도착한 창조의 가도에는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매일 열리는 작은 공연이 곧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이거 보고 가자. 그 동안 볼 시간이 없었거든."
실리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나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실리안도 내 옆에 앉았다.
공연을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반짝하고 분홍색 퀘스트 알림이 실리안 머리 위에 뜬다.
'어? 호감도 퀘스트가 왜?'
"혹 루테란에 들릴 일은 없나? 요새 미한이 무도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잘... 잘 안 되는 모양이야. 그래서 자네의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실리안의 애정 등급 퀘스트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자유도가 퀘스트 제공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좀 대답이 늦어지자 실리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어간다.
"어어어어! 가야지. 갈거야.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이에 실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내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나와 함께 돌아가는 건 어떤가?"
실리안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귀환의 노래는 파푸니카로 바꿔놓은 상태여서 차라리 실리안과 함께 가는 게 나았다.
"아. 근데 잠시 아델에게 다녀와도 될까?"
아직 아델에게 재롱을 못 떨었다.
"볼 일이 있는 건가?"
"응. 연주를 해주기로 했어."
그때.
퍼펑! 펑펑! 퍼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법으로 쏘아올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자네는...."
"뭐라고? 지금 저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자네 덕분에 즐거운 구경을 한다고 했네!"
실리안이 미소 짓는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입만이 웃고 있었으며, 나와 마주보는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실리안?"
"아델에게 다녀오면, 출발하도록 하지. 함께 루테란으로 돌아가는 것일세."
"그래! 태워줘서 고마워!"
실리안의 표정과 목소리가 묘하게 오싹했지만, 눈 앞의 공연에 정신이 팔려 금방 잊혀진다.
***
루테란에 도착해서는 미한과 함께 무도회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실리안과 도서관에서 두근두근 독서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흘끗 보니 실리안은 에스더 카단에 대한 책과 왕의 마음가짐에 대한 책을 훑어보는 듯 했다.
나는 대충 아무 책이나 뽑아 들어 뒤척거리다 금단의 딱지가 붙은 책을 발견했다. 중세 시대에 쓴 금단의 소설이 얼마나 금단이겠냐 싶은 심정으로 심드렁하게 책을 펼친다.
"허억!"
매웠다. 그냥 매운 것도 아니고 다진 마늘 베이스에 할라피뇨, 청양고추를 더하고 거기에 아바네로를 올린 화룡점정을 완성한 수준의 매운 맛이었다.
"미친....."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이라는 자각은 남아 있었기에 작게 중얼거린다.
"자네. 이런 취향인가?"
"끼양앙아ㅏ악!!"
털썩. 쿵.
너무 놀라 책도 떨어뜨리고 그대로 주저 앉는다.
"시.시시시시 실리안! 노.... 노놀랐잖아!"
도서관에 내 비명이 메아리치고,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인상을 쓰고, 사서가 달려와 엄숙하게 정숙해 달라며 요청한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돌아서는데, 실리안이 내가 떨어트린 책을 줍는 게 보인다.
"실리안!"
작게. 속삭여 그를 부른다. 그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볼 때를 틈타 그의 손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책을 낚아챈다.
"잘못 뽑았어! 책꽂이 뒤에 있길래 정리하려고 뽑아든 거야!"
그리곤 빠르게 책꽂이게 책을 꽂았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자네 꽤나 몰두하는."
실리안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의 손목을 잡아 도서관를 뛰쳐 나온다.
시부앙. 이판사판이다. 호감도 퀘스트 따위 나도 모르겠다.
"도서관은 충분했다. 돌아가자."
그대로 성 방향으로 걸어가려는데, 내 몸이 휘익하고 뒤로 당겨진다.
아코!
실리안의 탄탄한 가슴팍에 코를 박았다.
"자네. 어려보이길래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보군."
실리안이 나를 내려다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어느 샌가 실리안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다.다다당연하지. 성인식도 한 지가 언젠데. 요즈는 원래 작다고!"
"그렇군."
내 손목을 잡은 실리안의 손이 뜨겁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한 실리안의 눈동자에 검붉은 기운이 돌았다가 사라진다.
"그래. 그렇군. 자네 말대로 충분했다. 이만 돌아가지."
실리안은 나를 자신이 어릴 적 사용하던 방에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다. 방문을 닫으며 그를 슬쩍 보았다.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그에게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패자의 검도 황금색 빛 대신 불길한 붉은색의 기운이 맺힌다.
"실리안?"
평소와 다른 기운에 그를 부르는 순간. 잘못 봤다는 듯 모든 기운이 사라진다.
"왜 그러지?"
"아. 가면 고맙다고."
"천만에. 그대가 함께하는데."
실리안이 항상 그러하듯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손을 작게 흔들어 준 후 문을 닫는다.
고요함이 내려 앉은 방이 오늘따라 숨막힌다.
내가 정말 잘못 본 것인지 알 수 없는 검붉은 기운이 불안함을 불러일으킨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뭔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내 머리가 경고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