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기다리겠네.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 먹는 거 좋아하다 훅 갈 줄 몰랐지.
*전체적으로 로스트아크 설정 파괴 있습니다.

5화 : 먹는 거 좋아하다 훅 갈 줄 몰랐지.
다음날, 하녀장을 통해 실리안이 선물해 준 가면을 받아 착용하고 들어선 무도회장은 화려했다.
루테란에 자리하던 혼란이 사라지고, 오랜만에 열리는 무도회다 보니 힘을 많이 줬다고 미한이 말해주긴 했지만 이정도로 힘을 줬을 줄이야.
심지어 무도회장에 들어오자마자 든 생각이 '와! 화려하다!'가 아닌, '예산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여유가 있으니 한 거 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리안이 이 정도로 부자였어?!"
시이바... 실링 부자라고 베른의 사과 주스 가게에서 자랑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급 초라해진다.
평소 실리안이 검소한 모습을 보였고, 아나바다 운동을 할 정도로 재정을 아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루테란 재정이 좀 어려운가보다 했는데...
"왕족은 클래스가 남달라 가진 게 없다는 수준도 다르구만."
무도회장을 둘러보며 음식이 놓여진 곳으로 이동한다.
"초콜릿 분수가 있네. 그래 뷔페는 모름지기 초콜릿. 뭐?!"
중세 컨셉 시대에 초콜릿 분수라니 당황했지만, 초콜릿이 은은한 금빛을 내며, 천장의 샹들리에 조명에 반짝이며 쏟아진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옆에 놓인 국자와 컵을 들어 초콜릿을 떠 담았다.
"설마... 마법으로 금을.. 녹여서 초콜릿과 섞은 거야?"
눈이 돌아가고 입이 벌어진다.
그 옆의 디저트에는 마법으로 만들어낸 작은 식용 보석들이 콕콕콕 박혀 빛을 내고, 그릇들은 마법으로... 저쪽에 있는 샴페인 타워 분수도 마법으로.... 그 옆에 있는 푸딩은 마법으로... 그 옆에 건너 대각선에 있는 얼음 조각도...
이 무도회장 전체가 마법사들의 피땀눈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이건 힘을 준게 아니라 그냥 돈을 쳐 바른거잖아!'
역시. 괜히 에스더의 후예가 아니었어.
그때 내 입으로 쏙 하고 초콜릿 하나가 들어온다.
"어떤가? 내 자네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거야."
"실리안!"
가면을 쓰고 하얀 제복을 입은 금발의 남자가 초콜릿이 올려진 그릇을 들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어디서나 빛나는 그의 외모는 가면을 썼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 안에 무언가 들어있다.
"이게 뭐야?"
"음식 장식용으로 쓰는 식용 보석을 초콜릿 안에다가도 넣어봤다네."
실리안이 초콜릿을 하나 더 집어 입이 넣어준다.
오도독. 오도독.
식감이 은근 중독 된다. 마치 차갑지 않은 얼음을 씹는 느낌이랄까.
"맛있어. 초콜릿도 초콜릿인데, 안에 식용 보석 씹히는 느낌 최고!"
"그런가? 이게 마지막인데, 다음엔 자네를 위해 더 준비해야 겠군."
실리안이 들고 있던 접시에서 하나 남은 초콜릿을 입 안에 쏙 넣어준다.
계속해서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빠르게 먹어 삼킨다.
내가 다 먹은 걸 확인한 그가 허리를 숙여 내 귓가에 속삭인다.
"잠시 나에게 시간을 내주겠나?"
쿵덕!
급하게 올라가는 심박수에 개소리를 마음속으로 지껄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얼굴이 빨개졌을 게 분명한데, 가면 덕분에 가려져서 노골적으로 그 변화가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실리안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먼저 이동한다.
기분이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쿵덕쿵덕 나대던 심장이 단박에 조용해진다.
'자유도는 개뿔...'
샴페인 타워로 다가가 잔을 하나 뺀다. 그러자 그 자리에 퐁! 샴페인 따는 소리와 함께 잔이 생겨난다.
"아주 호사스럽네. 호사스러워. 평소 근검절약하던 실리안은 어디갔나."
순식간에 모든 게 아니꼬워 보인다.
이러면 안돼! 정신차려!
아니꼬운 감정을 샴페인과 함께 삼키고는 실리안을 따라 간다.
그가 향한 곳은 무도회장 안쪽에 따로 마련된 왕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테라스.
테라스로 들어서자 무도회장에서는 몰랐지만 화려하게 쏟아지던 빛들이 사라져 눈이 편안해 진다. 그리고 덩달아 마음도 풀리며 차분해진다.
테라스 너머 탁 트인 밤하늘이 보인다.
"루테란 성에 이런 곳이 있었네."
난간에 기대 밤하늘을 바라본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 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자리해 빛을 낸다.
"어때 마음에 드는가? 무도회장은 사람이 많아서 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싶어서 이리로 왔다네."
"응. 마음에 들어. 그러고 보니 루테란에서 밤하늘을 보는 건 처음인 거 같아. 너무 평화롭고 좋다. 이대로 계속 있어도 좋을 거 같아."
실리안이 내 옆에 서서 음료가 담긴 잔을 건넨다.
"사과 주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네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한 가지가 루테란에도 생긴 셈이지."
"루테란은 그런 것이 없어도 나에게 특별한 곳이야."
나는 잔을 들어 실리안의 잔에 쨘 부딫히고는 사과 주스를 마셨다.
주스를 다 마시자 실리안이 웃으며 또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른 음료도 마셔 볼텐가? 로웬에서 들여온 음료인데, 맛이 좋더군."
"좋지!"
그러고 보니 로웬은 딱히 퀘스트가 뜨지 않아서 안 갔는데, 괜찮은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실리안이 붉은빛을 띄는 음료를 따른다.
"로웬에서 나는 티로크 열매로 만든 주스에, 이렇게 투명한 식용 보석을 넣으면."
포옹.
티로크 주스에 실리안이 투명한 식용 보석을 떨어트린다.
토도도도도도톡. 토토토토토토도독.
탄산이 피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티로크 주스의 붉은색이 투명한 식용 보석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러자 음료는 투명한 색이되고 식용 보석은 티로크 주스의 붉은색을 담아 기포를 톡톡톡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거! 탄...탄산.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자네가 좋아할지 몰라서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간단한 마법이네. 식용 보석에 티로크 열매에만 작용하는 흡수하고 변환하는 마법을 걸은 걸세. 식용 보석이 티로크 열매에 있는 색소와 각성 성분을 빨아들여서, 각성 성분을 톡 쏘는 식감으로 변환한 거라네."
세상에! 탄산음료가!
마셔본다. 입 안에서 토도도톡 터지는 기포들. 이 탄산의 맛. 거기에 티로크 열매의 단맛이 더해지니 콜라와 비슷한 맛이 났다.
이 경우엔 색이 투명하니 사이다인가.
여튼. 꿀꺽꿀꺽 마신다. 목구멍이 따갑지만 탄산음료는 그 맛에 먹는 것이다. 식용 보석까지 와드드득 와드득 씹어먹자 충만해진다.
"너무. 너무 맛있다!"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먹는 거에 너무 약하군."
"응. 약하지. 그동안 이렇게 맛있는 걸 몰라서 못 먹었다고."
"하긴 자네는 잘 먹지 않았지. 아니 음식은 손도 안 댔다고 해야 하나."
실리안과 테라스 한쪽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음료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
모든 전투와 전쟁이 마무리 된 후의 미래.
그리고 잠시 동안 유지될 짧은 평화.
"그럼 이대로 계속 루테란에 있는 건 어떤가?"
실리안이 가면을 **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이 평화 뒤에 숨죽이고 있는 전쟁이 곧 일어날테지. 모두가 괴롭고 슬프고 힘든 시간이 될텐데, 그 전에 잠시라도 자네가 평화를 느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네."
대사가 바뀌었다.
"어둠 영원히 물러가지 않는 한, 자네는 계속해서 돌아다닐 수밖에 없겠지. 영웅은, 빛은, 그런 존재니까."
두근.
어? 몸이 이상하다. 심장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불규칙하게...
실리안과 함께 있는 테라스가 핑글 돌고.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다지만, 빛이 없는 자리에는 항상 어둠이 있었지. 그런 어둠을 빛이 어찌 이기겠나. 빛이 있기도 전부터 존재한 어둠을. 이토록 작은 자네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내 몸이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추락한다.
몸이 마비된 것인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꿈쩍할 수가 없다. 심지어 혀도 점점 굳어져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시... 실리아..안?"
"빛이 이기려면 아주 힘든 싸움이 될테고. 그 싸움에서 자네가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실리안의 구두코가 가까워진다.
구두코가 멈추고, 이번엔 그의 무릎이 보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뻗는 그의 손이.
휘익.
몸이 마비되어 자의로 움직일 수 없자, 그의 팔에 기대어진 등과 달리 지지할 곳이 없는 내 목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그제서야 눈에 보이는 그의 얼굴.
환하고 밝던 얼굴은 사라지고 퇴폐미가 가득한 창백함만이 남아있다. 그의 눈이 시선을 내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가 팔로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받친다.
"내가 돕는다고 해도 자네가 입는 상처가 줄어들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실리안이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들어올린다.
"아주. 아주 한정되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네."
실리안의 구두 소리, 작게 흔들리는 그의 몸과 함께 주변이 움직인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가고 눈이 감긴다. 버티려고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아래서 잡아 끌어내리듯 의식이 점점 가라앉는다.
"시...시리아...."
마지막으로 그를 불러보지만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실리안이 흘끗 눈을 내려 나를 본다.
그에게서 일렁이는 붉은 기운이 다시 보인다.
젠장.
잘못 되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나."
그의 말을 끝으로 세상이 암전한다.














